[제시문]
<가>
당나라 때의 유명한 화백 대숭(戴嵩)은 면밀한 관찰을 통해 생동감 넘치는 소를 잘 그려서 이름을 떨쳤다. 그 그림들의 가치는 돈으로 따지기 어려울 정도였다. 대숭이 그린 투우도(鬪牛圖) 한 폭이 전해져 내려오다 송나라 재상인 마지절(馬知節)이 이 그림을 소장하게 되었다. 마지절은 그림에 일가견을 가지고 있었기에 고금의 그림을 수집하여 감상하는 것을 큰 즐거움으로 삼았다. 그가 소장한 투우도는 유명한 명인이 오랜 세월의 관찰을 통해 생동감 넘치는 소싸움 모습을 그린 작품인지라 그는 이 그림을 극진히 아꼈다. 혹여 그림에 벌레나 좀이 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비단으로 덮개를 만들고 옥으로 족자봉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햇빛과 바람이 좋은 날을 택해 자주 밖에 내다 말리며 수시로 일광욕을 시키기도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대청 앞에 그림을 걸어놓고 바람을 쐬어주고 있는데 소작료를 내려고 찾아온 한 농부가 먼 발치에서 그 그림을 보고는 피식 웃었다. ‘글도 모르는 무식한 농부가 그림을 보고 웃다니…’ 마지절은 화가 나서 농부를 불러 세웠다.
“너는 대체 무엇 때문에 웃었느냐?”
농부는 고개를 조아리며 대답했다.
“그림을 보고 웃었습니다.”
“이 그림을 보고? 이놈아! 이 그림은 당나라 때의 대가인 대숭의 그림이다. 그런데 감히 네까짓 게 그림에 대해서 무얼 안다고 함부로 비웃는 것이냐?”
마지절이 불같이 화를 내자 농부는 겁에 질려 부들부들 떨면서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저 같은 무식한 농부가 어찌 그림에 대해 알겠습니까? 하오나 저는 소를 많이 키워보고 소가 서로 싸우는 장면도 많이 보았기에 소의 성질을 조금 알고 있습니다요. 소는 싸울 때 머리를 맞대고 힘을 뿔에 모으고 서로 공격하지요. 하지만 꼬리는 바싹 당겨 두 다리 사이의 사타구니에 집어넣고 싸움이 끝날 때까지 절대로 빼지 않습니다. 아무리 힘센 청년이라도 소꼬리를 끄집어낼 수 없지요. 헌데 이 그림 속의 소는 꼬리를 뒤로 뺀 채 싸우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 절로 웃음이…”
농부의 말에 놀란 마지절은 얼굴을 붉혔다. 그리고 대청에 걸어놓고 일광욕을 시키던 대숭의 그림을 찢어버리며 탄식했다.
“대숭은 이름난 화가이지만 소에 대해서는 너보다 더 무식했구나. 이런 엉터리 그림에 속아 평생 씻지 못할 부끄러운 헛일을 하고 말았도다. 그간 애지중지했던 내가 정말 부끄럽구나.”
<나>
소 그림 가운데 가장 격렬한 동세를 보이는 것은 역시 싸우는 소다. 호암갤러리 전시에 출품되었던 <싸우는 소>는 이제 막 싸움이 시작되는 장면을 포착한 것이다. 일정한 바탕색을 가한 후에 격렬한 동세에 따라 터치로 윤곽과 근육의 조직 및 꼬리의 모습을 예리하게 묘사해 내고 있다.
굵은 터치이거나 날카로운 선조에 의하거나 소의 격렬한 동세를 이렇게 단숨에 파악해 들어간다는 것은 소의 생태, 소의 해부학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쉬고 있는 소와 싸우기 직전이나 싸우는 도중의 소가 갖는 각각 다른 표정, 그리고 움직임에 따른 근육 조직 및 꼬리 등의 변화는 소의 생태와 해부학적 연구가 오랫동안 진척되지 않고서는 파악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정적인 상태의 것이 아닌 동적인 상태에 놓여 있는 경우는 더욱 까다롭기 마련이다.
이중섭이 몇 번의 터치에 의해 소의 모습을 가장 리얼하게 구현해 낼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 소에 대한 관찰의 깊이를 말해주는 것이다. 동경 시대부터 소를 모티프로 한 작품들이 등장하고 있는 점으로 미루어 소에 대한 관찰과 스케치는 이미 데뷔기에 시작되었을 것이다. 해방 후 원산 시대에도 여전히 소를 모티프로 한 작품들을 제작하고 있었으며 이때의 관찰은 주변 사람들에 의해 전해지고 있다. 들에 나가 소를 관찰하는데 어찌나 소를 유심히 보는지 소 임자가 소도둑으로 오인해 경찰에 신고했다는 에피소드는 유명하다.
원산 시대 이중섭 주위 사람들은 그가 소만 관찰하고 다닌 것이 아니라 부둣가에 나가 생선과 생선을 파는 여인네들도 열심히 관찰하고 스케치했다고 전하며 집에서 기르는 닭도 열심히 그렸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이중섭의 작품은 하나같이 관념적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닌 현장 스케치를 통한 관찰의 산물임을 알 수 있다. 격렬하게 얽혀 싸우는 소의 동작을 재빠른 붓놀림으로 거의 한숨에 내달릴 것 같이 표현해내고 있음도 이중섭의 소에 대한 오랜 관찰의 극히 자연스러운 결정체에 다름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다>
언더도그마(Underdogma)는 힘이 약한 사람이 힘이 약하다는 이유로 선량하며 정직하고, 힘이 강한 사람은 힘이 강하다는 이유로 비난받아 마땅하다는 믿음을 가리킨다. 언더도그마는 약자와 강자의 주장이 대립할 때 힘이 약하다는 이유 때문에 무조건 약자 편에 서면서 그 약자에게 신뢰와 정직함을 부여하고, 강자에게는 무조건적인 비난을 보내는 것이다. 랍비인 슈물리 보태악은 언더도그마의 개념을 “둘의 견해가 충돌할 때, 강자보다 약자의 말에 쉽게 귀 기울이며 믿는 것”이라고 했다.
사람들은 오버도그(Overdog)와 언더도그(Underdog), 즉 강자와 약자가 대립할 때, 강자에게 특별한 잘못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약자에 우선적인 동조와 지지를 보인다. 이런 증거는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성서의 다윗과 골리앗 이야기부터 미국 독립운동가, 1980년 동계올림픽에서 세계 최강 소련팀을 물리치고 금메달을 차지한 미국 하키팀, 영화 <록키> 시리즈의 록키 발보아, 자메이카의 봅슬레이팀 등의 사례에서 보듯 많은 이들은 오버도그를 외면하고 언더도그에 호응한다.
이런 현상은 현대의 실제 사회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난다. 대형마트 체인이 동네에 들어설 때 사람들은 일치단결해서 대형마트 경영자를 비난하고 동네에 있는 언더도그 구멍가게 편에 서는 경향이 짙다. 회사 사장과 직원 간 마찰이 있을 때 사람들은 으레 직원의 말에 더 솔깃해한다.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그것은 두 가치가 충돌할 때 힘이 강한 오버도그를 반사적으로 비난하고 힘이 약한 언더도그의 말에 솔깃하며 그것을 옳다고 여긴다는 점이다.
문항
2-1. 답안 확인 전 분석 권장
<가>의 밑줄 친 부분에서 보이는 마지절의 미덕(美德)을 쓰고, <나>의 글과 그림을 활용하여 그의 행위를 비판하시오. (300자±30자)
[예시답안]
밑줄 친 부분에서 보이는 마지절의 미덕은 공허한 명성에 휘둘리지 않고 현장 지식이 풍부한 사람의 말을 경청하고 수용한 데 있다. 그러나 <나>를 참조할 때 그림을 찢은 그의 행위는 섣부른 것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싸울 때의 소는 꼬리를 절대로 빼지 않는다는 농부의 진술과는 달리 <나>의 이중섭의 소 그림과 현장의 사진에서 보이듯 소는 싸울 때 꼬리를 다리 밖으로 빼기도 하기 때문이다. 마지절이 엉터리라고 보고 찢은 ‘소꼬리가 밖으로 나온 대숭의 그림’은 사실은 소싸움의 역동적인 한 순간을 잘 포착한 것일 수도 있으므로 그의 행위는 성급했던 것으로 평가된다.
[우수답안]
마지절은 화가의 명성이나 자신의 자존심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이 무식하다고 여겼던 농부의 의견을 순순히 이해하고 인정하는 미덕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마지절은 좀 더 넓은 시야를 가지지 못한 채 농부의 말에 쉽게 휘둘리는 어리석음을 보여주기도 한다. <나>의 자료인 이중섭의 <싸우는 소>와 현실의 소싸움 사진에서 싸우고 있는 소는 모두 꼬리를 뒤로 빼고 있다. 소가 꼬리를 빼고 싸우는 경우도 있는 것이고, 투우도를 그린 대승 또한 이중섭처럼 자세한 관찰을 통해 발견했을 그 사실을 그림으로 나타낸 것인데 마지절은 그러한 생각에까지 가닿지 못했던 것이다.
2-2. 답안 확인 전 분석 권장
<다>에서 설명하고 있는 핵심 개념과 그 구성 요소들이 <가>의 상황에 적용될 가능성을 타진한 후, 그 적용의 한계에 대해서도 언급하시오. (600자±60자)
[예시답안]
<다>의 핵심 개념인 언더도그마는 사람들은 강자와 약자가 대립할 때 약자의 주장을 신뢰하는 경향이 있음을 뜻한다. 그렇기에 언더도그마의 하위에는 강자의 주장, 약자의 주장, 판단자라는 세 구성요소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언더도그마와 하위 요소들은 <가>의 상황에 적용될 수 있다. 왜냐하면 <가>에도 강자와 약자의 대립이 있고 판단자가 약자의 편을 드는 현상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가>에서의 강자는 대숭이다. 그는 관찰을 통해 ‘소의 꼬리가 밖으로 빠져 있는 소싸움 그림’을 그린 바 있다. 농부는 약자에 대응되는데, 그는 대숭의 그림과 대립되는 주장을 한다. 즉 ‘소는 싸울 때 절대로 꼬리를 빼는 법이 없다’고 본다.
이 둘의 대립에서 판단자 마지절은 농부의 입장을 지지한다. 대숭 또한 소를 관찰하며 그림을 그렸다는 점에서 볼 때 소의 모습에 대한 전문성은 농부에 못지않지만, 대숭의 그림을 부정하고 농부의 주장을 받아들인다. 이 행위는 언더도그마, 즉, ‘강자와 약자의 주장이 대립할 때 사람들이 약자의 편을 쉽게 드는 경향’과 닮은 점이 있다.
한편, 마지절이 소에 대한 농부의 현장 전문성을 대숭의 전문성보다 더 높이 사서 한 행위라고 한다면 그 행위는 언더도그마의 틀에 가두어 적용할 수만은 없다는 한계가 있다.
[우수답안]
<다>는 무조건적으로 약자를 옹호하고 강자를 비난하는 언더도그마 현상을 설명한다. 오버도그와 언더도그, 즉 약자와 강자의 견해가 충돌할 때 약자에게는 힘이 약하다는 이유만으로 신뢰와 정직함을 부여해 그의 편에 서고 강자에게는 힘이 강하다는 이유만으로 비난을 가하는 것이다.<가>의 마지절 입장에서 강자와 약자, 즉 오버도그와 언더도그는 뚜렷이 구분된다. 마지절은 유명하고 돈이 많은 대승을 오버도그로, 그에 반해 소작료를 내는 처지에 있는 가난하고 글 모르는 농부를 언더도그로 보았을 수 있다.따라서 농부가 그림에 대해 말했을 때 마지절이 순순히 그 말을 신뢰하며 대승을 무시하고 그림을 찢어버리기까지 한 것을 언더도그마에서 비롯된 언행으로 볼 수 있으므로 <다>의 개념과 구성 요소들이 <가> 상황에 적용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이러한 적용은 자칫 타당한 이유로 약자를 지지하는 상황에 대한 일반화를 불러올 수가 있다. 마지절이 농부의 말을 받아들인 것을 단지 무조건적으로 약자를 지지하고 강자를 비판한 결과라고 볼 수만은 없다. 이름난 화가인 대승이 소에 대해서는 농부보다 무지했다는 그의 말을 통해, 마지절은 언더도그마와는 관계없이 그저 농부가 화가보다는 소에 대해 더 잘 알고 있으리라는 생각에 그러한 행동을 한 거라고도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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